현지 참가자가 말하는 ‘왕은 없다’ 시위의 의의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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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토) 제3차 ‘왕은 없다(No Kings)’ 집회가 미국 전역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로 열렸다. 주최 측 추산으로 하루 동안 무려 3,300곳에서 도합 800만 명 넘게 참가했다!
뉴욕시에서는 35만 명이 도심 대로 두 개를 꽉 채워서 시내를 마비시켰다(출처: Hands-Off NYC).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도 20만 명이 모였다. 세인트폴은 미네소타주 주도(州都)로, 지난 1월 말 이민세관단속국(ICE) 항의 운동이 분출한 미니애폴리스와 함께 ‘쌍둥이 도시’라고 불린다. 보스턴·시카고·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LA) 등 미국 주요 대도시들뿐 아니라, 인구 밀도가 낮은 알래스카·하와이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필자가 있는 지역에서도 수천 명이 지방법원 앞 공터에 모였다. 지역 ICE 감시단, 전쟁에 반대하는 전역 군인들, 삼삼오오 모인 대학생들, 대학원생 노조, 할머니들의 지역 모임 등 각양각색의 기층 조직들이 모였다. 다양한 세대와 인종이 한데 어우러진 축제 분위기였다.
시위대는 직접 만든 스티커와 호루라기를 나눠주고, 간식과 물을 나눠 먹으며 서로를 응원했다.(호루라기는 ICE 감시단 활동을 상징하는 물품으로, ICE 요원을 발견하면 이를 이웃들에게 알리는 데 쓰인다.)
집회에서 만난 한 이주 배경의 대학생은 집회에 참가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팔레스타인인 인종학살, 이란 전쟁 등이 벌어지는 지금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상황에 불만이 있어도 거리 행동이 벌어지지 않으면 나만 이상하다고 느끼고 위축되기 쉽잖아요. 여기서 머릿수를 하나라도 늘려서, 이 상황이 전혀 정상이 아니고 당신들처럼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반전(反戰) 정서
이번 ‘왕은 없다’ 집회는 올해 1월 ICE 항의 운동의 여파와, 한 달간 이어지고 있는 이란 전쟁에 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벌어졌다. 그런 만큼 ICE 축출과 이란 전쟁 반대가 단연 핵심 구호였다.
물가 상승이 낳는 생활고, 팔레스타인인 인종학살 규탄, 엡스틴 파일 공개, 트랜스젠더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 표현의 자유, 아이들의 교육권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손팻말도 등장했다. 전국적으로 통일된 구호는 없지만, 아래 구호가 여러 집회에서 널리 외쳐졌다.
“왕을 거부한다, ICE를 거부한다, 전쟁을 거부한다! 더는 참지 않을 것이다.”
“왕을 거부한다, ICE를 거부한다, 파시스트 미국을 거부한다!”
“도널드 트럼프, 똑똑히 들어라. 우리는 이주민을 환영한다!”
‘왕은 없다’ 지도부의 정치
이번 ‘왕은 없다’ 집회는 지난해 10월 말 이후 약 5개월 만에 개최됐다. ‘왕은 없다’ 집회는 지난해 6월 말에 처음 시작해 대략 분기에 한 번 꼴로 열려 왔다.
올해 1월 전국을 뒤흔든 ICE 항의 운동은 1월 30일을 정점으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운동 지도부들은 ICE가 미네소타에서 집중 단속을 멈춘 후 운동의 동원을 해제하고, 그 동력을 3월 말 ‘왕은 없다’ 집회로 흡수시켰다. 한 달 간 동원의 공백이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이전 기사에서 ICE 항의 운동이 반(反)트럼프 운동으로 일반화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운동이 (적어도 아직은) 그렇게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왕은 없다’ 집회는 인디비저블과 50501, 무브온 등의 단체들이 발의하고, 각종 지역 단체들이 자기 지역에서 집회를 조직하는 구조다. 그래서 지역마다 구호나 정서에 차이가 있다.
집회 주도자들은 정치적 초점이 되는 특정 지역의 집회를 ‘주력 집회’로 삼는데, 이번에는 미네소타 집회였다. 주력 집회에서는 민주당 정치인들이나 민주당 유관 인사들이 연단에 선다.
이번 미네소타 집회에서는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연방 하원의원 일한 오마, 미네소타 주지사 팀 월즈, 미네소타 부지사 페기 플래너건 , 미네소타 법무장관 키스 앨리슨 등 민주당 인사들이 연단에 섰다.
버니 샌더스는 트럼프의 군국주의가 국내외로 연결돼 있다고 연설했다. 트럼프가 헌법에 반하고 부도덕한 전쟁을 벌이고, 군비 지출 때문에 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국내 불만을 탄압하려고 “훈련 안 된 호전적 폭력배”를 이용한다고 규탄했다. 샌더스는 ICE 축출과 이란 전쟁 반대 구호를 외쳤다.
의의와 과제
‘왕은 없다’ 집회가 있던 날, 트럼프는 플로리다주의 골프 리조트로 휴가를 갔다. 시위대가 항의해 봤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다. 지난번 ‘왕은 없다’ 집회 때 트럼프는 왕관을 쓰고 헬기에서 시위대에 오물을 투하하는 AI 영상을 SNS에 올렸다. 이번에는 그만큼 역겹지는 않아도 치졸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트럼프는 취임 이래 최대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그 자신이 일으킨 이란 전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을 공격하며 4주 안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언했지만, 국면마다 말을 바꾸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이 일으킨 전쟁의 전황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전쟁이 촉발한 생활고 위기, 경제 위기도 심각해지고 있다. 한 달 사이 국제 유가가 40퍼센트 넘게 상승하고 국제 교역망에 차질이 생기며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번 ’왕은 없다’ 집회는 트럼프의 이란 전쟁과 그것이 키운 위기 등 때문에 트럼프 반대 여론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줬다. 이번 대규모 집회의 기세를 몰아 위기를 겪는 트럼프에게 결정적 한 방을 날려야 할 때다.
‘왕은 없다’ 주도 단체들은 이제 5월 1일 메이데이를 하루 행동의 날로 잡고 있다.